나의 이카루스, 당신은 떨어질 걸 알면서 하늘로 날아오르나요. 그렇게 나를 떠나가나요. 그녀의 오랜 연인인 여자는 간결하게 이별을 고한다. 그녀가 이유를 묻기도 전에 여자는 특유의 조곤조곤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한다. 여자는 파일럿이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이제 아니기 때문이다. 여자의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고, 여자는 그 결과 한 쪽 눈...
“당신이 제니퍼 골드죠.” 장을 보고 집에 가던 길, 수염이 덥수록하고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백인 남자가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무더운 더위에 두꺼운 팔뚝에 피부가 벌겋게 올라있었다. 나는 그의 말에 잠깐 멈칫한 걸 부디 그가 보지 못했길 빌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그를 따라오며 계속 귀찮게 했다. 남자가 과장스럽게 입을 ...
“잭, 오늘은 언제 들어와?” “열두 시 전에.” “그럼 올 때 비누 좀 사와. 누가 하루에 절반을 넘게 쓰더라.” 상체에 수건 하나 걸치고 나온 루비와 그를 따라 나온 칫솔을 입에 문 다이아가 말했다. 신발을 고쳐 신던 잭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집을 나섰다. 끼이익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녹이 슨 문이 애매하게 닫힌다. 쓰레기와 건물 잔해가 굴러다니는...
너는 뛰어나니까, 저 위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을거야. 그래도 가끔은 우릴 보러 와주겠니? 아야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가 절대 그럴 일 없으리란 걸 알았다. 하늘로 올라간 사람 중 다시 돌아온 사람은 지난 수십년간 단 한 사람이었다. 배속에 아이가 있었으니 두 사람이라 해야하나. 어쨌든. 하늘에 올라간 사람들은 내려오지 않는다. 그는 어디에...
파랑은 땅을 삼켰다. 발 디딜 곳 사라진 인간들의 선택은 두 가지였다. 가라앉지 않기 위해 떠다니며살거나, 하늘로 날아올랐다. “오늘 하늘로 간다며? 부럽다. 난 언제쯤 하늘에 갈 기회가 올까.” 늪의 막노동꾼 녹턴이 한탄하듯 말했다. 그는 늪에서 태어나 끊임없이 가라앉는 도시를 끄집어내는데 평생을 보냈다. 아직 이십 대에 불과한 그였지만, 그들의 ‘정착...
나무를 숨기려면 숲이 최적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숨기기에는 사람들 틈바구니가 최고였다. 그가 서울을 떠나지 않은 이유였다. “현우씨, 이것 좀 옮겨줄래요?” 현우는 대답 대신 그가 말한 책들을 들고 따라간다. “비쩍 말랐는데 힘도 좋아. 젊어서 그런가?” 젊은 여자 주인이 운영하는 개인서점은 여자 직원뿐이다. 처음에는 남자의 비율...
그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무더운 공기에 한결 위안을 주는 산산한 바람이 끈적하게 달라붙은 땀을 말린다. “내가 당신을 어디까지 봐줘야하죠? 내가 당신한테 바란 별 거 아니잖아요. 내 옆에 가만히 있기. 가만히 있는 것조차 못하겠으면 적어도 내 옆에 있으라고요.” 그는 붉게 달아오른 눈동자로 응시했다. 험악한 어조를 듣지못했다는 양...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미친 곳에 기어들어왔을까. 환영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애매하게 미지근한 커피가 든 잔을 손에 들고 생각했다. 얼음이 녹아 밍밍해진 커피는 맛이 없어보일뿐더러 도대체 언제 만든건지 먼지마저 뽀얗게 토핑으로 올라가져 있었다. 환영은 커피를 내주인 이에게 어색한 표정만 잔뜩 보이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마자 잔에 든 걸 바닥에...
‘사랑한다.’ 그가 찾은 유서는 한 장뿐이었다. 그는 보자마자 갈갈이 찢어 변기에 뿌려버렸다. 집안은 영안실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금방이라도 가슴을 째고 안을 들여다봐도 될 정도로 피가 빠져 창백한 사람들, 차가운 공기, 그는 그 계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땡볕에 나와있는 사람처럼 땀을 흘리면서도 동시에 설산에 고립된 사람처럼 벌벌 떨었다. 시체들이 가...
그는 또래아이들에게 뭇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었다. 이유는 별 거 아니었다. 단지 그가 눈에 띄었을 뿐이었다. 그들에게 그건 그저 게임같은 거였다. 같은 학급 아이들은 누구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는 그게 가장 아팠다. 그는 억울하고, 화가 났으며, 동시에 그의 유일한 친구마저 그를 버릴까 무서웠다. 혹여나 괴롭힘당한다는 사실을 들킬까 근 일주일을 피해...
날이 흐리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같이. 부디 내가 이 짓 하는 동안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남운은 2층 틀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생각했다. 생각보다 2층까지 높이가 됐다. 1층에서 튀어나온 그것들이 발 바로 아래에서 휘적거리며 그를 잡으려하고 있었고, 남운은 겨우 발을 벽에 대며 중심을 잡았다. 하지만 그러자 팔에 힘이 빠지는게 문제였다. 이미...
하얀 천장, 하얀 의자, 하얀 책상에 하얀 종이를 앞에 둔 하얀 옷을 입은 의사, 구름이 지나치게 낀 하늘마저 하얗다. 동백은 지나치게 눈이 부셔서 그가 자신에게 무어라 말했는지 듣지못했다. “-할 생각이니?”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가 희미하게 닿았지만 동백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하얗다고 말할 수는 없는 팔에 하얗게 색이 든 흉터를 긁어내리는 동백을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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